* 본 연재는 제가 청소년문화연대 '킥킥'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행기를 올리는 공간입니다. 이곳과 킥킥의 달려라 캥거루는 편집의 차이로 약간의 변형이 있을 예정입니다. '킥킥'에서 달려라 캥거루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달려라 캥거루 1화 - 나는 도대체 왜 떠나버린 걸까?
* 본 연재는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호주 관광청, 주한 호주 대사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콴타스 항공의 전폭적인 지원을 금전적, 물질적, 정신적으로 받고 ‘싶’습니다.
안녕? 나는 참기름이라고 해. 그래 우리가 밥 비빌 때 넣는 그거 맞아. 왜 참기름이냐고? 나는 지금 거짓말과 진짜를 비비려고 하거든. 지금 이 글은 모두 소설이야.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그만인 이야기들이지. 어쨌든 이제부터 나는 지난 2011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해. 뭘 그렇게 옛날이야기를 하려고 하느냐고? 그냥, 그때가 재밌었거든. 아 오늘의 이야기는 약간 슬픈 이야기지만.
2011년 1월, 나는 군대를 전역했어. 여느 남자들이 그렇듯, 나는 세상이 자신 만만했지. 운동으로 살도 많이 뺐고, 근육도 조금 붙었으니까. ‘경험’이라는 데 미쳐있던 그때, 나는 문득 군대 때문이 아닌 그냥 일반휴학을 해보고 싶어졌어. 딱 한학기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영어학원을 다니고, 여름에 일 개월만 영어권 국가에서 여행하고 깔끔하게 복학하자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게 문제였어. 이 휴학이 나비효과가 될 줄은 몰랐거든.
휴학을 결정하고 휴학 연장 서류를 내러 학교에 갔다 오고 내가 한 일은 쇼핑이었어. 간만에 만들어진 체력을 완벽히 쓸 수 있는 아웃도어 물품들이 가지고 싶었던 거야. 마침 우리 동네의 한 유명 아웃도어 업체 본사에서 이월상품을 헐값으로 내놓았어. 마치 전장과도 같은 그곳에서 내가 고른 건,
어... 어느 나라로 떠날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고 싶다는 속내가 드러났다고 해둘게 그리고 저 가방! 50리터짜리 초대형 가방으로 캐리어 대신 들고 다니겠다는 마음으로 저 둘을 구매하게 됐어. 저것도 모자라서 아이젠까지 샀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봤을 때 여름에 떠날 걸 생각했으면서 왜 저런 겨울용품을 샀는지는 사실, 나도 모르겠어. 그냥, 땡겼다고 해두자고.
그렇게 한 뒤 3월부터 영어학원을 다녔어.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았지. 방학기간 아르바이트가 아닌데도 괜찮다 싶은 일(최저임금 준수, 봉급 떼이기 싫어서 좀 큰 곳에서 일하는 곳으로 찾아다닌 게 함정이라면 아주 초대형 함정)은 잘 안 잡히더라고. 그러다가 생각 없이 지원한 집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연락이 오더라고. 좋은 경험이겠다 싶어서 일을 했고, 만족하면서 일을 했지. 사람들도 굉장히 좋았지. 그리고 늘 그렇듯, 그런 곳에서 한 명 정도 여자로 보이는 사람 있게 되기 마련이잖아? 그래서 천천히 친해지고 있었던 나날이었어.
문제는 일을 한 지 2주쯤 지났을 때 생겨버렸어. 일을 쉬는 날 친한동생하고 문자로 그 여자아이(편의상 ㅎ 이라고 하자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ㅎ에 대한 얘기를 한 문자를 동생이 아니라 그 아이한테 보내 버린거야! 나중에 ㅎ한테 연락이 와서 뭐냐고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를 채더라고. 다행히도 그게 자기라는 건 눈치 못 챘어. 그래서 이틀 뒤에 일하는 데서 말해달라고 하더라고. 이걸 어쩌지 하다가 난 밤을 꼴딱 샜어.
그리고 그 다음날 친구를 만나러 갔지.
군대를 들어간 시기가 비슷해서 요 몇 해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을 만나러 갔어. 얘네 모두 10년 넘게 알고지낸, 죽마고우들이다 보니 연락이 온 게 너무 반가웠지. 생뚱맞게 서울촌놈들이 강남에서 보자고 한 것이 이상했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서 놀러간거야. ‘서울 촌놈들이 무슨 강남은 강남이야!’라고 외치며 애들과 만났는데, 얘들이 어쩐지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면서 낯설게 잘 해주는거야. 집안 형편이 많이 안 좋은 놈이 커피 값을 내지 않나, 조만간 여행을 가자는 둥. 나는 그냥 좋아서 좋다고 하다 보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 아니나 다를까, 이놈들이 불법 다단계를 하고서 날 끌어들이려고 하더라고. 당연히 자리 박차고 싸우고 나왔지.
기분은 나쁘지만 일은 일이니 다음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어. 근데 그날이 ㅎ하고 같이 오픈 준비하는 날이어서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ㅎ가 문자 이야기를 하며 누구냐고 묻더라고. 다른 사람으로 둘러대려고 했는데 그 사람 이야기 아닌 것 같다며 반박을 해서 어쩌다 말했어. 그게 너라고. 둘이 멍하니 얼고 한 3초가 흐른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게 무슨 고백을 청소기를 들고 했나 싶어. 아무튼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것으로 그 분위기를 수습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에 진짜 드라마처럼 다른 직원이 들어와서 ‘둘이 뭐해요?’라고 하는 바람에 아무런 말도 못해버렸어. 일하면서 지나가다 잠깐이라도 뭐라 말하려 하면 도망가더라고 황당하게. 그날 마침 내가 더 일찍 퇴근하는 날이라 먼저 퇴근하고 옷을 좀 차려입고 얘기 좀 하자고 문자를 보낸 다음 그 옆에 있는 카페에서 대기했어. 한참을 기다리다 뭔가 이상해서 ㅎ하고 친한 다른 동생을 불러냈지. 그리고 상황 설명을 했더니 동생이 하는 말 ‘형, 문자 안오는 게 당연해요. 누나 오늘 폰 바꾼다고 오늘 퇴근하면 새 번호 알려준다고 했는데요? 그리고 누나 아까 다른 형하고 말다툼 했는데, 그것 때문에 오늘까지 일한다고 하고 그만뒀어요.’
아니 뭐 상황이 이래? 하는데 갑자기 동생의 폰에서 문자가 오는 거야. ‘ㅎ입니다. 핸드폰 번호가 지금 이 번호로 바뀌었으니 저장해주세요^^’라고. 나한테는 오지 않은 문자인지라, 얘기 좀 하려고 동생한테 동생의 폰으로 걸어보라고 말을 했지. 근데 꼭 그런 애들 있잖아, 요금 안내고 버텨서 받는 것만 되게 하고 다니는 애들. 이 동생이 그런 상태인거야. 어쩔 수 없이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받고 바로 끊더라고.
다음날 경찰한테 전화 왔어. 스토커로 신고됐다고.
상황이 어떻게 종료되고 내 주위를 돌아보니, 내게는 친구와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고(정확히는 충격에 그만두고) 상처밖에 안남아 있었어.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걸까. 그래서 실험을 해보고 싶어지더라고. 그게 여름에 놀러 가려고 호주행 비행티켓을 한 달로 맞춰놓고 여행 비자를 받아놓은 것을, 육개월로 바꾸고 워킹홀리데이비자로 비자를 바꾸게 되는 계기였어.
그게,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어처구니없는 결론이었고, 이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어.
'달려라 캥거루 (작자편집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려라 캥거루 3화 (1) | 2017.02.02 |
---|---|
달려라 캥거루 2화 (1) | 2017.01.24 |